'KBO리그 레벨업 프로젝트' 선수 배제하고 잘 될까?
"다 결정되고 난 뒤 통보만 받았다"
문제는 제도 도입을 논의하면서, 정작 가장 큰 영향을 받는 선수들의 의견을 배제했다는 데 있다. KBO는 이번 제도 개선에 관해 "TF를 구성했고 KBO리그 현장, 미디어, 해외 야구 전문가, 아마추어 야구 지도자, 학계 인사 등 외부 인사 9명과 심층적인 논의를 통해 전략 방향을 수립했다"고 밝혔다. 여기서 말하는 '현장'이 누구인지 묻자 KBO 관계자는 "선수 출신 단장들"이라고 답했다. 또 선수들의 의견을 수렴하는 과정이 있었느냐는 질문에는 "2023 WBC(월드베이스볼클래식) 기간에 대표팀 선수들과 일대일 면담을 통해 리그의 문제점에 대해 폭넓은 의견을 청취했다"면서도 "피치 클락과 같은 구체적인 제도 개선안과 관련해서는 이야기를 나누지 않았다"고 답했다. 프로야구 선수협회(선수협) 관계자도 "우리 쪽과는 전혀 논의한 바가 없다. 다 결정되고 난 뒤 KBO 고위 관계자로부터 '이렇게 할 것 같다'는 통보만 받았다"고 밝혔다.
한국보다 먼저 제도 개선을 단행한 미국 메이저리그(MLB)에선 달랐다. 미국은 각종 규칙을 만들고 제도를 개선할 때 최초 논의 단계부터 선수들의 의견을 듣는다. MLB 경기운영위원회는 구단 관계자 6명과 선수노조 소속 위원 4명, 심판 1명 등 총 11명으로 구성된다. 작년 9월 경기위원회에선 4명의 선수노조 소속 위원 전원이 피치 클락 도입과 수비 시프트 제한의 2023년 시행에 반대표를 던진 바 있다. 당시 토니 클락 선수노조 사무총장은 성명을 통해 "이번 협상에 참여한 선수 리더들은 사무국에서 제안한 규칙 변경 사항에 대해 구체적이고 실행 가능한 피드백을 제공했다. 그러나 메이저리그 사무국은 선수들이 제기한 우려 사항을 의미 있게 다루려고 하지 않았다"며 유감을 표했다.
미국에선 선수들도 파트너로 참여
선수노조와 MLB 사무국은 시즌 중인 현재도 계속해서 소통하며 새 제도의 문제점과 보완책을 연구하고 있다. 최근엔 선수노조 측이 "포스트시즌에선 피치 클락을 사용하지 말자"는 의견을 전달했고, 이를 사무국에서도 진지하게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야구에선 리그의 중요한 사안을 결정할 때 선수들이 대등한 '파트너'로 참여한다. 그래서 명칭도 CBA(Collective Bargaining Agreement), 즉 '단체교섭 협약'이다. 구성원들 간의 협의를 통해 룰을 정한다는 취지가 담겼다. 반면 한국에서 CBA에 해당하는 룰은 '야구 규약'이라 부른다. 협약보다는 중앙집권 하향식 '규제'의 뉘앙스가 강하다. 실제로도 선수는 배제하고 사무국과 구단끼리 멋대로 정하니 '규약'이라 부르는 게 맞다.
피치 클락 도입 소식을 '통보받은' 선수들 사이에선 우려와 불만의 목소리가 적지 않다. 한 에이전시 관계자는 "피치 클락이 비교적 성공적으로 자리 잡은 미국에서도 여전히 논란이 진행 중인 것으로 안다"면서 "특히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 투수들이 불안감을 표출하고 있다"고 전했다. 실제 미국 현지에선 올 시즌 초반 투수들의 부상과 수술 사례가 잇따르면서 피치 클락과의 상관관계를 의심하는 목소리가 나오는 중이다. 숨돌릴 틈도 없이 투구를 계속해야 하는 피치 클락이 노장 투수들에게 불리하게 작용한다는 지적도 있다.
투수층이 약하고 주자들의 도루 시도가 활발한 KBO리그엔 피치 클락이 적합하지 않다는 의견도 있다. 한 구단 관계자는 "1군 주전급 투수들도 스트라이크를 제대로 못 던져서 애를 먹는데, 타이머까지 켜놓고 시간에 쫓기면 더 큰 어려움이 따를 것이다. 볼넷이 크게 증가하고 대량득점 경기가 속출하는 것 아닌지 걱정이다. 피치 클락을 도입하려면 자연히 견제 제한 규정도 함께 도입해야 하는데, 그러면 안 그래도 많은 도루 시도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할 것"으로 예상했다. 이와 관련 KBO 관계자는 "미국처럼 견제 제한과 피치컴(포수-투수가 사인을 교환하는 기기)도 함께 도입할지는 논의가 필요한 부분"이라고 설명했다.
경기장당 1억원이 넘는 피치 클락 장비 비용, 운영 인력도 해결해야 할 문제다. 미국 스포츠 매체 '디애슬레틱'에 따르면 피치 클락 장비는 담당 인력이 매번 수동으로 초기화하는 방식으로 운영하며, 경기장마다 타이머가 조금씩 빠르거나 느리게 작동하는 등 휴먼 에러가 발생하는 문제가 있다.
이번 제도 개선과 관련해 한 지방구단 소속 투수는 "선수들 사이에서는 이번 일과 관련해 그냥 넘어가서는 안 된다는 얘기가 나온다. 반드시 문제제기를 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와 관련 선수협 관계자는 "그간 KBO 측에 실행위 회의 때 선수협도 참석하게 해 달라고 수차례 요청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오는 8월 실행위원회(단장회의)에는 반드시 선수협을 참석하게 해달라고 요청한 상태"라며 "이 요구가 받아들여지는지 여부를 지켜본 뒤 후속 대응 방안을 논의할 것"이라고 말했다.